
The Four Seasons of a Duke
[세르시온] 봄
"세르펜스! 이것 보세요..! 꽃이 피어났어요!“
봄이라 그런지 맑게 개인 날이었다. 푸른 하늘에 구름이 부드럽게 날아가고, 시온이 사왔던 작은 꽃망울이 피어난 날이었다. 연분홍 빛깔의 탐스러운 꽃잎이 불어오는바람에 살랑거렸다. 분명, 그 무엇보다 아름다울 관경이었지만 나는 그저 시온이 너무나도 아름다워 보였다. 하늘보다도맑은 웃음, 사랑스러운 꽃의 향기가 그의 몸에맴돌며, 나를 톡톡 건드려대었다. 눈을 깜박이면, 그 웃음이 사라질까, 불안감에 그 어떤 말도 내뱉지 못한 체 망설이고, 또 망설였을까.
"세르펜스..?"
다정하게 불려오는 나의 이름에, 난 그저 심장을 부여잡고 중얼거렸다.
아, 이것이 사랑이었군..
사랑을 자각한다는 건 그동안 꿈꾸고 보아왔던 그 무엇과도 다른 감각이었다. 너무나도 쉬었지만, 그 무엇보다도 어려운 감각, 그래. 나는 봄날 터오르는 새싹처럼 이 마음을 알아차렸다.
어느새 마음속에 자란 감정처럼 꽃이 피지도, 열매가 열리지도 않은 그 연약한 생명은 봄을 알리는 모습답게, 언제나 당당하게 모습을 드러냈었다. 녹빛의 아름다운 색이, 햇살에 비치는 그대와 닮아, 나는 그 앞을 떠날 수 없었다.
그렇다고 그대를 붙잡을 수도 없었다. 선우라는 이름답게, 약한 사람을 감싸 안는 선함에 어떤 사람이 이끌리지 않을 수있을까, 모두가 바라보지 않았던 나를 단순히 책 한권 읽었다는 이유로 굳게 믿었다. 이유 모를 믿음은 나도 모르게 그를 찾기 시작하게 된
이유였다. 길가에 난 작은 새싹 조차 그의 모습이 떠오를 정도로, 난사랑을 하고 있었다.
그래서 붙잡을 수 없었다.
너무나도 소중한 그대를, 내 욕망으로 더럽힐 수 없었다. 바람결에 창문 너머로 날아오는꽃 향기에도 나는 그저 눈을 감아 외면했다. 지금도 그가 다른 사람에게 곁을 내줄까 겁이났다. 그 책에 의해 믿을 수 있는 사람이 아닌 이상 난, 그를 홀로 둘 수가 없었다.
"세르펜스가 있잖아요!"
날 믿는다고 말하는 그 사람에게, 어떠한 위험도 줄 수 없었다. 설령 그것이 나 자신이더라도, 난 믿을수 없었다. 그래서 그 믿음에 낮게 한숨을 쉬면서도 내 발걸음은 당신을 뒤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세르펜스, 꽃 피었는데 꽃놀이라도 가요!"
"꽃놀이 말씀이십니까..?"
"네! 도시락도 싸고, 꽃구경도 하면서 간식 같은 것도 사 먹고 그러는거죠!"
마차에서 창가를 내보다가 좋은 것을 발견한 듯 잔뜩 신이 난 듯 외치는 당신의 말에 피식 미소를 흘릴 수밖에 없었다. 어째서인지 멍한 얼굴로 역시.. 명예 엘프라고 중얼거리며 꽃놀이에 대해 아무리 물어보아도 정신을 못 차리는 시온이 너무나도 귀여워 보여서 세르펜스는 얼굴을 짚었다. 자신의 심장이 미친 듯이 날뛰고있었다.
세르펜스는 그대로 붉어진 얼굴을 쓸어내리며 한숨을 폭 내쉬었다. 이렇게 변화를 일으키는 사랑이란 감정이 참으로도 무서웠다.
공작가에 도착해 겨우 정신을 차린 시온의 방에서 간식으로 나온 연한 빛깔의 머랭을 조심스럽게 입에 넣었다. 연한 초록빛, 사과 맛 사탕과도 비슷한 색의 그것은 입에 넣었으나 그 어떠한 향기도 나지 않았다. 의아함에 고개를 기울였을까, 시온이 맑게 웃으며 다른 머랭을 내밀어왔다. 연한 분홍 빛깔의 머랭은 바깥에 피었다던 꽃잎 색과도 비슷해서 자연스럽게 입으로 받아먹게 되었으나, 달콤한 맛 사이에 꽃의 향기는 그 어디에도 없었다.
"이건 그냥 색을 낸 머랭이에요, 아! 만들기도 어렵지는 않을 테니까,
세르펜스도 만들어 보실래요? 저랑 같이 만들어요!"
그 말에 거절을 못 한 건 순전히 마지막 말 때문이었다. 같이 만든 머랭을 꽃놀이에서 먹자면서 기분 좋은 콧노래를 부르는 선우를 바라보는 눈 속에 차오르는 감정이란, 말로 다 표현 못 할 정도로 아름답게 빛나서 눈을 감을 수밖에 없었다. 봄날에 비춰오는 햇살인가, 달콤하게 녹아드는 크림같이, 저 창밖에 흩날릴 꽃잎보다도 더욱 아름다워서 난 그 빛남을 나는 손에 쥐고 싶었다.
하지만, 나에게 그걸 붙잡을 권리 따윈 없지 않을까. 씁쓸한 입안을 훑으며 맑게 미소를 띄웠다. 숨기지 못한 기대감이 나의 추악한 본심만을 숨겨주기를. 나에게 선우를 보내준 신에게 조금이나마 욕심을 부리듯 기도를 올렸다. 들리기를 바란 건 아니지만, 선우는 그럼에도 눈치 못 챈 듯 웃고 있으니 상관없지 않을까.
나는 피크닉 가서 무엇을 할지 즐겁게 떠드는 선우의 뒤를 따르며 작게 웃음을 흘렸다.
"피크닉이 그렇게도 기대되십니까?"
"당연하죠! 이곳에서의 첫 피크닉인걸요! 세르펜스한테 경험시켜줄게 넘쳐나니까 걱정 말고 따라오세요!"
그래, 이렇게 당당하게 가슴을 두드리는 당신을 보는 욕심은 부려도 되지 않을까. 나는 천천히 나를 붙잡는 이성을 조금은 뒤로 미뤄두었다. 뭐라 표현해야 할지 알 수 없는 이 사랑 앞에 선 나는 어쩔 수 없는 약자였다.
♡♥♡
세르펜스는 머랭을 만들자며 뛰쳐나가는 시온의 등을 천천히 쫓았다. 두근거리는 심장이 자신을 지배한 것만 같았다.
'이걸 기쁘다고 해야 하는 건지..'
감정을 느낄 줄 모를 거라 생각해온 자신이 이렇게 감정을 느끼고, 사랑을 느끼게 된 것은 모두 선우의 덕택이었지만, 가끔은 욕심이 치고 올라왔다. 붙잡고 싶었다. 가지 말라고 하고 싶었다.
하지만 그래서는 안된다.
세르펜스는 이성의 외침에 정신을 차리며 계란 흰자를 섞다 지친 듯이 핵핵거리며 '전기...!'라고 외치는 시온의 등을 천천히 쓸어내렸다. 흰자와 설탕만으로 달콤한 디저트가 되어버리는 것이, 하얀 빛깔이라 어느 색으로도 물들 수 있다는 것이, 누구보다 다양한 색으로, 여러 맛을 가지고 있을 것 같으면서도 변하지 않는 맛이, 자신이 알아오던 선우와도 같아서 세르펜스는, 뭉쳐진 하얀 크림에 초록빛 가루를 섞었다.
봄을 닮아 그 누구보다 따스하며 어느 사탕보다도 마음을 위로해주는 누군가를 닮은 색이었다.
머랭을 완성한 그들이 피크닉을 온 장소는 하얀색, 노란색, 분홍색.. 화려함을 뽐내듯 색색깔의 꽃들이 노래를 부르는 공터였다. 세르펜스의 부지였으나 당사자는 한 번도 오지 못했던, 결국 누군가의 손을 타지 않아 자연 그대로의 아름다움을 뽐내듯이 자리 잡은 장소였다.
부그럽게 내려오는 햇빛을 따라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부드럽게 들어오는 장소에서 가만히 시온을 내려다보았다. 나무 아래로 쏟아지는 햇살이 보석 조각처럼 선우의 피부를 아름답게 비추었다. 나도 모르게 입이 벌어졌다.
"------"
얼굴이 열에 달아오르는 게 느껴졌다. 가만히 멈추어있는 시온을 두고서는 도망쳐 버린 건 어쩔 수 없던 일이었다. 자신의 감정이 결국, 이성을 이겨버린 것이었기에 세르펜스는 시온의 반응도 보지 않고서는 다급하게 달려나갔다. 그의 심장은 미칠 듯이 뛰다 못해 튀어나올 듯이 자기 자신을 괴롭혔다.
“이.. 이게 무슨.. 세르펜스..?”
혼자 남은 시온은 당황해서 눈을 도르륵 굴렸다. 믿을 수 없는, 들어본적도 없는 말에 농담이냐며 웃으려고 하던 자신을 놀리듯 뛰어가는 세르펜스의 귓가는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
자신이 여기의 누군가에게, 그것도 세르펜스에게 그렇게 보일거라고는 상상도 못했는데.. 시온은 두근거리는 심장을 삭히며 놀라 떨어뜨린 화관을 바라보았다.
하얀색과, 푸른색을 쓰고, 가끔 붉은빛의 작은 꽃으로 포인트를 준 그화관은 누가 보아도 세르펜스와 닮아 있었다.
‘---워’
화관을 바라보자 세르펜스의 얼굴이 떠올랐다. 머릿속에서는 아까의 말이 기억을 자극하듯이 꽃향기와 섞여갔다. 부끄러움에 시온의 귓가가 걷잡을 수도 없이 붉어졌다.
“자기가 더 예쁘면서..”
투덜거리는 그 말에 숨길 수 없는 사랑이 잠들어 있는 것도 모른 척 시온은 꽃을 쥐었다. 뭉개지듯 퍼지는 향기가 숨길 수 없는 봄을 알리고 있었다.
♡♥♡
“세르펜스..”
화가 난 듯이 울려 퍼지는 시온의 목소리에 세르펜스는 간식을 몰래 집어먹어 혼났던 그때 이후로 처음으로 시온의 눈을 피해 천천히 고개를 돌렸다. 자신이 말을 하고 도망쳐 1주일간 최대한 피해 다닌 탓인지 공작가에는 이미 세르펜스와 시온의 다툼이 널리 퍼져있었다.
"시온.."
세르펜스는 화가 잔뜩 난 듯한 얼굴로 씩씩거리며 자신에게 다가오는 시온을 바라보았다. 무얼 말할지 긴장되어 벌써부터 심장은 말을 듣지 않았다. 자신에게 실망했다고 할지, 경멸하는 눈으로 바라볼지, 자신은 알 수 없었다. 봄의 따스한 햇살이 창문을 타고 들어와 세르펜스를 감싸 안았지만, 세르펜스에겐 차가운 겨울바람처럼 느껴졌을 뿐이었다.
"참나, 세르펜스가 더 예쁘면서 저한테 아름답다고 하면 어떡해요!"
그래서 시온이 소리쳤을 때 그는 그저 멍하게 시온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화를 내는 것도, 항의를 하는 것도 아닌, 단순한 투정.
시온이 열심히 세르펜스 자신의 외모 찬양을 하는 것을 들으며 눈을 몇 번 깜박였을까, 결국, 세르펜스는 맑게 웃음을 터뜨릴 수밖에 없었다. 자신이 불안을 피하기 위해 노력하고 노력했어도 결국 잡아먹히고 마는 것을 선우는 그 불안마저 잠재워 주었다. 정말로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이었다.
봄에 피어나는 새싹처럼 희망을 품은 사람, 다정한 햇살처럼 모두를 품어주는 사람, 장난기 많은 바람처럼 웃고, 흔들리는 꽃처럼 딴짓을 부리다가도 어느새 모든 걸 이끌어주는 사람이었다. 봄이라는 계절을 사람으로 만들면 이렇게 될까 싶을 만큼, 아름답게 피어나 날 이끌어주는 사람.
세르펜스는 나지막이 노래 부르듯 읊조렸다.
"당신에겐, 질수밖에 없네요."
그 누구보다 평범하기에, 나에겐 그 누구보다 특별했었습니다.
"나의 친애하는 선우."
my dear.
이 짧은 단어 속에 담은 수많은 말을 담아 세르펜스는 자신의 사랑에게 천천히 전했다. 어지럽게 섞여가는 감정이 마구잡이로 얽혀갔지만, 그럼에도 지금을 놓치면 안 된다는 마음 아래 그는 그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눈을 감았다.
"---"
들려오는 대답에 난 웃음을 지었던가, 놀라 그대로 멈추었던가, 봄만되면 기억 속에서 늘 찾아 헤매는 마지막 단어의 기억에 세르펜스는 천천히 기억을 더듬었다. 몇 년이 지났지만 생생히 기억나는 이야기 속에서 유일하게 흐릿한 부분. 아마 그때 제정신이 아니었기에 눈치를 챌 수 없었던 것이겠지. 세르펜스는 피식 웃음을 흘리며 첫 고백을 되뇌었다. 아직 사랑이 도착하지 않았으니 그날의 기억을 떠올려 선물을 전해주는 것도 좋은 생각이겠지.
세르펜스는 낮게 흥얼거리며 연한 녹색의 새싹을 엮었다. 분명 첫 고백 때까지는 엉망진창이던 실력이 자신보다 뛰어나졌다며 볼을 부풀리며 투덜거리던 사람의 향기를 닮은 달콤한 꽃과, 그의 색을 닮은 연한 녹색이 어우러져 봄을 그려낸 듯 단아하지만 화려한 화관이 완성되었다.
"아도르..! 뭐하고 있어요?"
노크도 없이 빼꼼히 내밀어진 고개가 귀엽게 갸웃거렸다. 그 모습에 작게 웃음을 흘리곤 천천히 화관을 들고일어난 세르펜스는 그 사람에게 다가가 끌어안듯 화관을 씌우고선 맑게 웃었다.
"당신이 처음으로 내게 주었던 선물이 생각나서 말이죠. 당신을 닮은이것을 선물해주고 싶었습니다."
'세르펜스와 닮았죠? 제가 세르펜스에게 연인으로서 주는 첫 선물이에요!'
"이렇게 씌우니 더 아름답네요"
'와아! 세르펜스 진짜 엘프인 거죠?! 저 외모에서 빛이 나서 순간 숨이 멎을뻔했다고요!'
"나의 봄, 나의 사랑, 선우. 언제까지나 저와 함께 해주세요."
""사랑해요."맞죠?"
나의 말을 예측하고선 맑게 웃으며 화관을 고쳐 쓰는 시온을 내려다보았다. 언제나 아름다운 사람이었다. 변하지 않는 나의 봄. 따스하고 따스한 사랑은 영원의 시간을 타고 울려 퍼지는 음악처럼 우리의 사이를 이어주리라.
세르펜스는 충족감을 느끼며 오랜만에 감사 기도를 올렸다.
'지금이나마, 신에게 감사를 올립니다. 저는 선우를 만난 순간부터 변하지 않는 아도르였습니다. 저에게 그런 선우를 보내준 신에게 감사를 드립니다.'
그것은 부족한 자신을 탓하던 기도도, 모든 것을 포기했던 기도도 아닌 그저 지금에 감사를 올리는 기도, 그 처음에 답하듯 영원한 봄은 그렇게 연인 위에 자리 잡았다.